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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 여행 1(땅끝마을 & 세연정)

Life & more/볼거리 | 2009.07.28 08:27 | Posted by 스마트 안전보건

개인적으로 완도 보길도 여행은 11년만에 가는 여행이었다.

98년 전역 후 동아리 선후배들과 함께 갔었고 그 후 10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나

다시 찾은 보길도는 예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처럼

상당히 많이 변해있기도 했었다.

그 이야기 보따리를 슬슬 풀어볼까 한다.

 

보길도 여행은 우리나라 땅의 남쪽 끝인 땅끝마일에서 시작한다.

완도에서 가는 방법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땅끝마을도 구경할겸 해서 땅끝에서 많이들 시작한다고 한다.

땅끝마을은 토말로 알려져 있으며 영어로는 고유명사처럼 Ttang Kkeut로 표기된다.

표지판을 보고 한참 웃었다. 너무 촌스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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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마을 공원에 있는 시석(詩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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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마을 공원에 있는 시석(詩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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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마을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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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마을 전망대(현재는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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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마을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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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전망대 모노레일

 

보길도에 도착한 나는 숙소에 짐을 풀고 유명한 해수욕장 두 곳에서 해수욕을 즐겼다.

보길도에는 크게 해수욕장이 3곳 있다. 예송리, 중리, 통리 해수욕장이 그것들이다.

특히 예송리 해수욕장은 백사장이 아닌 검은 자갈로 돼 있어서 다른 해수욕장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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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송리 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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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리 해수욕장

 

이 쯤에서 보길도에 대해서 잠깐 알아보도록 한다.

보길도는 완도에서 남쪽으로 32km정도 떨어진 섬이다. 그 생김새가 쟁기에 끼우는 보습 형상이어서 보습의 어원인 '보고래 섬'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그 곳에 산이 빙 둘러싸여 있어 푸른 아지랑이가 어른거리고, 무수한 산봉우리들이 겹겹이 벌여 있는 것이 마치 반쯤 핀 연꽃과도 같아 부용동(芙蓉洞)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곳. 파도를 따라 한수 한수 떠밀려와 어부사시사로 머문 곳, 고산 윤선도 선생의 흔적으로 남아 있는 곳.
고산 선생은 아름다운 부용동의 순수 자연경관을 기반으로 하면서, 주변 경물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최소한의 인위적 조성(건물과 정원요소)을 추가하여 원림을 조영하였다. 이것이 기존의 정원과 다른 점이다. 고산선생이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며 의미를 부여하였던 그 자연경관 속으로 들어가야만 비로서 고산선생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고산선생의 보길도유적은 바로 그 부용동원림 자체이기 때문이다.

 

세연정(洗然亭)

세연(洗 然)이란 기분이 매우 상쾌하고 단아한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세연정은 회수담과 세연지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정방형 정자로 난방시설까지 갖추었으며, 사방으로 문을 열어 젖힐 수 있는 개방된 구조였다. 세연정의 편액을 칠암헌(七岩軒)이라 하고 사방에 각기 다른 편액을 걸었는데 중앙엔 세연정(洗然亭),남쪽엔 낙기란(樂飢欄),서편엔 동하각(同何閣),동편엔 호광루(呼光樓)라 하였다. 세연정은 낙서재 터, 곡수당, 석실과 함께 보길도에 남아 있는 네 개의 고산선생유적 중 규모가 가장 크고 원형이 비교적 잘 보전된 대표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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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연정 동영상 첨부 예정임 

 

세연지(洗然池)

우리나라의 정원 유적 중에서 조형처리가 가장 화려하고 광대한 연못으로 계곡의 물을 잘 이용한 연지(蓮池)이다. 세연지는 농토에 물을 공급하기 위하여 담(潭)을 이루고 있는데 연지 북쪽의 인공적인 직선형과 남(南)쪽의 자연적인 곡선형으로 나눌수 있으며 연지(蓮池) 내부에는 암석과 축판등을 볼 수 있다. 세연지는 항상 맑은 물이 찰랑거리게 하였고 작은 배를 띄워 어린 아이들이 뱃놀이하면서 어부사시사를 읊조리는 것을 감상하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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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東臺)

세연정의 좌측에 위치해 있는 축단으로 어부사시사가 불리워지면 시가무합일(詩歌舞合一)이라는 예악사상(禮樂思想)에 의하여 군무(群舞)를 하던 곳이기도 하던 이곳은 연지에 담겨있는 조원(造苑) 철학 즉, 동대와 서대로 만들어지는 2개의 섬은 하늘의 우주와 땅의 형이상학적 세계관(성리학에서 理論와 氣論)인 성리학의 기본인 愼獨의  心의 心論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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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석실(洞天石室)
낙서재로부터 정북쪽으로 직선거리 약 1km지점 해발 100~120m에 위치하고 있다. 동천석실로 접근하는 석문(石門), 석제(石梯), 석천(石泉), 석폭(石瀑), 석대(石臺) 및 희황교(복희씨) 등의 유적이 있다. 동천석실은 아슬아슬한 절벽 위에 세운 한 칸짜리 정자로 서책(書冊)을 즐기며 신선처럼 소요하는 은자(隱子)의 처소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동천(洞天)이란 신선들의 거주처인 동천복지(洞天福地)에서 연유된 것. 

낙서재터를 잡던 처음에 안산(案 山)을 마주하고 앉아 있다가 한참 뒤에 가마를 타고 곧바로 석실로 향해가서 황무지를 개척했다. 기교하고 굉한한 석문(石門), 석제(石梯), 석난(石欄), 석정(石井), 석천(石泉), 석교(石橋), 석담(石潭)은 모두가 인공의 손이 닿지않은 자연 그대로의 것으로 그 모양에 따라 명명되었던 것이다. 이곳에 한간 집을 석함(石函)속에 짓고 명명하기를 ‘동천석실(洞天石室)’이라 하였던 것이다.
선생은 이곳을 사랑하여 부용동 제일의 절승이라 하였다. 그리고 그 위에 집을 짓고 수시로 찾아와 골짜기와 격자봉 낙서재의 건물이 환하게 펼쳐지는 것을 구경하였고, 무릇 사건이 있으면 무민당에서 기를 달아 서로 호응하기도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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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수당터(曲水堂)

   선 생이 건물 짓는 것을 싫어하여 학관이 자신의 사재(私財)를 털어 지은 곳으로 남쪽 난간은 취적(取適), 서쪽 난간은 익청(益淸)이라는 편액을 달았는데, 정자는 세연정보다 다소 작지만 섬돌과 초석을 놓은 데는 정교함을 다했다. 초당 뒤에는 평대(平臺)를 만들고 삼면으로 담장을 둘러 좌우에 작은 문을 두고 있다. 그 중간에는 꽃과 과일나무를 심고, 담장 서쪽 끝에는 물이 흐르고 있는데 삼층의 층계는 지형에 따라 만들어졌으므로 높낮이가 일정하지 않다. 담 밑에 흐르는 물은 낙서재 오른쪽 골짜기에 정자 십여 보 아래 조그만 연못으로 흘러내리는데 이곳에 일삼교(日三橋)가 가설되어 있다.  부용동 팔경중의 「연당곡수」가 이곳이다. 지금은 논밭으로 변해버려 옛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곡수당 유적지는 개울가에 축조한 석축과 구 뒤편 언덕 아래로 쌓은 돌각담들이다. 개울가로 물을 담아 두었던 것으로 보이는 시설이 지표 아래로 조성되어 있다. 계곡 상류의 물이 수로를 따라 바로 흘러들게 되었는데 그렇더라도 연못으로는 너무 깊다. 현재 발굴중이다.

 

나의 보길도 여행 첫 날은 땅끝 -> 해수욕장(중리, 예송리) -> 세연정에서 끝났으며

이튿 날은 망끝 전망대 -> 공룡알 해변 -> 해남 대흥사와 유선관으로의 여정을 남겨둔 채 삼겹살 파뤼를 준비했다. ㅋㅋ

 

<보길도 여행 팁 - 땅끝에서 보길도>

배편(여름 성수기 기준) : 아침 7시 배를 시작으로 30분마다 있으며 막배는 18시임

운임 : 성인 6,300원, 차량 16,000원(운전자 포함)

시간 : 30분이 소요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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